막장드라마 병맛극장!! 김씨의 사이다 시네마!!!! 스님과 어머니 그리고 나의 아내!!!
불심이 깊은 어머니와 얼마전 결혼한 아내...불심 깊은 그 마음이 불러온 비극적인 이야기.
'스님과 과부 어머니 그리고 젊은 나의 아내....'
본 이야기는 사연을 시청하는 분들의 생생한 현장감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제작자의 각색이 많이 추가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텍스트를 즐기셔도 좋지만 영상을 통해 보시면 더욱 재미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막장스튜디오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전 어머니와 아내를 잃었고
더 나아가서 제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출생의 비밀을 알 게 되고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
가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아내와 어머니 연을 끊고
그 스님이라는 사람을 멸빈 시킨 것으로 만족하네요.
수년전의 이야기지만 힘들어 죽고싶다는 게시글을
보고 제 이야기를 한 번 끄적거려봅니다.
저희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늘 절에서
살다시피 하셨고 가족의 안위와 제 앞날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절에서 잘 되게 해주리라 굳은 믿음이 있으셧
습니다. 어느정도냐면 제가 결혼을 하기 위해 사귀던
여자를 데리고 오면 종교의 이유로 극심한 반대를
하셨으며 며느리는 적어도 불교신자를 얻어야 한다고
늘 말씀을 하셨죠. 이런 종교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아버지와의 불화도 많이 생기긴 했는데 이런 환경속에
서도 사실 전 종교를 믿지는 않습니다. 무교까지는
아니어도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부처님을 믿는
다고나 할까요.
어머니로 인해 몇 번의 파혼이 있었고 결국 선을 보고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를 만나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제 아내와의 사이는 매우 좋았어요. 같이
절에 다니고 불교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 즐거워 했고
다른 집에서 볼 수 있는 고부간 갈등은 전혀 없었어요.
절이라 해봤자 외곽에 위치한 중소형급 절인데 그곳을
엄마가 소개 시켜 줬는지 아내도 자주 가더군요.
그리고 때마침 저희 아버지가 암판정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아버질
두고 엄마는 오히려 치성을 통해 아버지의 병세를
낫게 하겠다고 절에 다니셨으며
이에 질세라 아내 또한 절에 자주 나갔습니다. 당시
우리 계획과는 달리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았는데
엄마와 아내는 아버지의 병환과 저희 집에 아이까지
들어서게 해야 한다며 절에서 살다시피 하더군요,
당시 아버지 병간호와 아이 문제로 저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투병 중 돌아가시게 되었고 저희 집은
여전히 아이는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홀로 지내시게 되자 저는 합가를 권유했지만
엄마는 극구 사양을 했고 홀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셔 결국 멀지 않은 곳에 엄마의 집을 전세로
다시 얻어드리고 자주 들여다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엄마집에 들르니 스님 한 분이 계시더군요.
딱 봐도 아버지뻘 되는 나이로 보였고 저희 엄마와
꽤나 친했는 지 둘 사이가 각별해 보이더군요. 엄마와
아버지는 일찍 결혼해서 저를 나으셨으니 그 스님도
꽤 정정한 나이때로 느껴졌고 처음엔 무관심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엄마집에 들렀을 때 그 스님이
와 계신 걸 보았고 그 스님 또한 저와 친하다 생각 하셨
는지 이 것 저 것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죠. 전 처음
부터 종교를 믿지 않았기에 거리를 두었지만 엄마가
우리 부부 아이 문제를 이야기 하셨는지 그 스님이
꼭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저는 그닥 믿기지도 않았는데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글쎄 아내와 스님 두명
만 집에 앉아 있더군요. 전 그 스님이 어찌 우리집에
있는 지 의아해 했고 아내는 스님께서 직접 방문하셔
우리를 위해 더 신경써주신다며 자랑을 했습니다.
당시 아내의 외출도 잦아졌는데 보통은 절에 치성을
드린다며 밤늦은 귀가 또는 외박까지 했습니다.
왜그리 절에 집착을 하냐며 그만좀 하라고 우리 엄마
하는 행동에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며 당신까지 이러지
마라며 만류했지만 아내의 신앙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 정성어린 치성이 하늘에 닿았는 지 아내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초상집 같던 우리 집에 다시 활기가 띄게 된 것이죠.
아내는 우리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다며 하늘을 날듯
기뻐했고 어머니 또한 잘 되었다며 이 기쁨을 그 스님과
함께 하자고 하시더군요.
결국 아내의 몸조리가 끝나고 그 스님을 불러다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 스님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던 저마저도
아 이런 일이 실제할 수 있구나 하고
믿음이 생기자 그 스님에 대한 나쁜 인식은 절로
사라져버리고 마치 제 아버지를 대하듯 저도 존경의 의미
를 담아 그 스님을 대했습니다. 헌데 이상한 게 그
스님이 고기반찬도 먹더군요.
스님의 숟가락에 이것저것 반찬과 불고기를 올리며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챙겨주려는 아내의 행동에 덥썩
한 숟갈 챙겨 먹는 스님의 모습이 좀 이상했지만
요즘 세상에 종교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 했습니다.
헌데 더 이상한 것은 엄마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스님을 챙겨 주는 행동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는 먼저 나가서 아내를 따로 부르더군요. 뻘줌한
스님과 나는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
아내의 표정까지 굳어져 나왔고 그렇게 이상한 식사
자리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 상관 없었습니다
귀여운 아이만 봐도 모든 근심걱정과 기분 상했던 일
들은 모두 한번에 사라졌기 때문에요.
그 이후부터 엄마집보다 우리집에 그 스님의 출입이
더 잦아졌습니다. 퇴근하고 가면 늘 그 스님이 있었고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많아졌으며 어쩔땐 그 스님이
우리 아이를 안고 있는 경우까지 있더군요. 거의 식구
같은 존재가 된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아이를 생기게 해 준 은인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모습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였으며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그 스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손주 대하듯 우리 아들을 대하는 그 모습에
너무 고마웠고 아내 또한 친정아버지 대하듯 그 스님
곁에서 이것저것 챙겨 주며 최선을 다하더군요.
하지만 그 이후 아주 큰 일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도저히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고
맨정신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전 뒷목을 잡고 쓰러졌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수라장이 되어 있고 엄마는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악을 쓰고 계셨습니다.
아내가 스님과 바람이 났습니다. 그 아빠뻘 되는 스님
하고 제 아내가 바람이 난거죠. 엄마가 아내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흔들며 말한 게 거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몇 년 안 된 아내가 젊은 날 두고
저런 아저씨뻘 스님과 바람이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엄마를 뜯어 말렸지만 엄마의 손에 쥐고 있던 몇장의
사진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절의 툇마루가 있는 방에서 스님의 품에 안겨
있는 아내의 사진 몇장. 그리고 중절모를 쓰고 말끔히
차려 입은 그 스님의 팔짱을 끼고 여인숙으로 들어
가는 아내의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연인처럼
식당에 마주보고 앉아 서로 식사를 즐기는 사진,
아내는 그 스님과 눈이 맞아 시도때도 없이 그 스님을
만나온 것이고 엄마는 어찌 알고 사람을 써 그 증거를
수집한 것이죠. 난 눈이 뒤집혀 아내를 추궁했고 결국
아내는 모든 걸 내려 놓은 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세상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저에게 일어난
것이죠.
그렇습니다. 아내는 엄마를 따라 그 절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 스님의 보살핌아래 극진한 대우를 받던 중
그 스님에게 기를 받는다며 몸을 내어 주었는데 그
기수련이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또 세 번 되며
아내는 그 스님에게 홀려 버린 것이죠.
저는 억장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졌고 그 스님을 처 죽일
기세로 절을 찾아 갔습니다. 하지만 그 스님은 행차를
나갔다고 만날 수 없었고 제 분노는 아내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극심한 고통과 갈등, 분노 속에서
아내와 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결혼한 지 몇 년만에 이혼을 하고 아이는
내가 키우게 된 것이죠.
그 후로 거의 폐인이 되다싶이 했고 그 절에 몇 번을
찾아가 불을 지르려 하다 저지를 당했습니다. 경찰서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처지로 떨어져 버렸죠.
하지만 엄마는 그런 저를 다독이며 이 게 다 하늘의
뜻이라며 그 스님을 절대로 미워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그 스님이 아니라 그 스님에게 꼬리친 전처가 문제고
절대로 그 스님에겐 잘 못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2살짜리 아들에게서 전 그 스님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제 아들의 얼굴에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그 스님의 얼굴이 갑자기 겹쳐져
보였던거죠. 제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이후 계속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스님의 얼굴이 보였고
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아무에게
안 알리고 우리 아들과 저의 친자확인을 했고
또 한 번 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친자확인 결과 제 아이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아이마저
그 스님.. 아니 그 땡중의 아이었을까요...
전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어찌 제게 이리도 가혹한 일이 벌어지는 지.. 혼자
괴로워하는 제 옆에서 엄마는 영문도 모른채 저를
달래어 주었지만 엄마에게 손주가 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할 순 없었습니다. 품에서 생글생글 웃고는
있지만 제 아이는 아니며 그 땡중의 아이일 가능성이
큰 이 아를 또 탓할 수도 없었죠.
전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혼한 전처는 제껴두고 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그 땡중을 먼저 보내고난 다음에야
이승을 뜰 수 있었습니다. 먼저 말통에 기름을 가득싣고
차에는 번개탄을 사다 놓은 채 그 절로 향했고
그 휘발유통을 들고 그 스님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들....아들...’
그 땡중의 입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나의 몸은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아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왜 당신의 입에서 나에게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냐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으며
이어서 나온 말들은 절망으로 떨어진 나의 인생을 한층
더 깊은 절망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이 스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불륜관계에 있었으며 이 스님과 엄마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이 사실은 돌아가신
아버지는 끝내 모르고 돌아가셨고 이후로도 스님과
엄마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이 땡중은 엄마를 꼬득일 때처럼 똑같이
기수련을 해야한다며 저희 전처를 꾀어 냈던 것이죠.
전처와 땡중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이를 눈치 챈
엄마는 그 때 그 난리를 치며 전처를 내쫓다시피 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아들은 아마 이 땡중의
아들일지도 모르죠.
진짜 할말을 잃은 벙어리가 되어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땡중의 어떤 부분이 좋아 엄마는 이 땡중과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이 늙어버린 땡중의 어떤 부분에
빠져 전처는 이 아들을 낳은 것일까요. 결국은 나부터
이 땡중이 친부가 되고 그럼 나의 아들은 나의 이복
동생이 되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토악질이
나와 더 이상 그 땡중 앞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절을 나와 미친놈처럼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으니
저만치 헐레벌떡 맨발로 산길을 급히 올라오는 저희
엄마가 보였습니다.
제가 이성을 잃은 것인지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 엄마
모습이 마치 악마처럼 보였고 엄마를 피해 달아나려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그 땡중을 감싸는 엄마의 말에 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악질로 개워냈고 엄마를 세게 밀쳐
내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 산속에 저 땡중과
들어가 살든 죽든 해라며 혼자 비틀거리며 돌아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서 모든 것을 초월하신 듯
미소를 띄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애초에 고기를 좋아하는 스님은 있을리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땡중을 멀리해야 했음에도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듯 잘 대해준 제 잘못이 더 컸습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땡중이 제 친부이고
이 아이의 친부가 또 그 땡중이라는 사실을...
저의 분노는 극에 달하자 오히려 절망감으로 변했고
더 이상 그 땡중, 아니 그 절로 향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전 그 땡중이 속해 있는 종단을 알아냈고 그 종단의
호법부에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낱낱이 까발랐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로 소식을 듣기엔
그 땡중은 스님의 승적을 박탈당한 멸빈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몇 년동안 전 엄마와의 연을 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아들도 당시 보육원에 보내려
했지만 천진난만한 그 아이를 보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고
지금 홀로 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들
유치원 입학식이 있던 날입니다. 엄마 없이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아들은 내 앞에서 단 한번도 엄마를
찾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둘이서 행복하게 살고 있네요.
살아가며 누구나 가슴에 한 개 이상의 한을 품고 있다
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 때 먹은
생각처럼 그 땡중을 죽이고 내 삶마저 포기 했다면 난
오늘처럼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도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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